재위: 1863년 ~ 1897년 (조선 26대 왕)
대한제국 황제 재위: 1897년 ~ 1907년
휘: 이형(李熙)
묘호: 고종(高宗)
부왕: 헌종(조카가 없어 철종이 즉위, 이후 고종이 철종의 뒤를 이음)
왕비: 명성황후 민씨
1. 즉위와 대원군의 섭정 (1863~1873)
고종은 1863년, 철종이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왕위에 올랐습니다. 당시 고종은 12세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인 **흥선대원군(이하 대원군)**이 섭정을 맡아 정치를 주도했습니다.
🔹 흥선대원군의 주요 개혁 정책
- 왕권 강화: 세도정치의 폐해를 줄이고,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 확립
- 경복궁 중건(1865): 조선의 국운 회복을 상징
- 서원 철폐(1868): 전국의 서원을 정리하여 재정 확보 및 왕권 강화
- 통상수교 거부 정책: 서양 세력의 침략을 막기 위해 쇄국 정책 유지
그러나 대원군의 강력한 개혁과 쇄국정책은 많은 반발을 불러왔고, 결국 1873년 고종이 친정을 선언하면서 대원군은 실권을 잃게 되었습니다.
2. 개항과 외세의 압박 (1873~1894)
고종이 친정을 시작하면서, 그의 왕비인 **명성황후(민씨)**와 민씨 일가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.
🔹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(1876)
- 일본이 운요호 사건(1875)을 일으켜 조선을 압박
- 강화도 조약 체결(1876) → 조선이 최초로 외국과 맺은 근대적 조약
- 조선이 일본에게 부산, 원산, 인천 등 개항
- 일본 상인들의 경제적 침탈이 시작됨
🔹 근대 개혁과 외국과의 조약 체결
- 조미수호통상조약(1882년): 미국과 최초의 조약 체결
-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(1882년): 청나라와 조선 간의 경제 협약
- 광혜원(1885년): 최초의 서양식 병원 설립
- 전기·전신·우편·기차 도입
🔹 임오군란(1882)과 갑신정변(1884)
- 임오군란(1882년): 구식 군인들이 차별 대우에 반발해 일으킨 반란
- 갑신정변(1884년): 김옥균 등의 개화파가 급진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
🔹 동학농민운동과 청·일전쟁(1894~1895)
- 동학 농민군이 정부의 부패를 규탄하며 봉기
- 조선 정부가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 → 일본이 이에 반발해 청일전쟁(1894~1895) 발발
- 일본 승리 후, 조선에서 청나라 영향력 축소
3.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 즉위 (1897~1907)
🔹 대한제국 수립(1897)
- 청나라의 영향력이 사라지자, 조선은 독립을 강화하려고 노력
- 1897년, 고종은 조선을 ‘대한제국’으로 선포하고 황제 즉위
- 광무개혁(1897~1904) 실시
- 근대적 행정 체제 개혁
- 군사 개혁 및 산업 발전 추진
- 금본위제 도입 및 화폐 정리 사업
그러나 대한제국은 일본의 압박으로 인해 독립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.
4. 일본의 강압과 고종의 퇴위 (1905~1907)
🔹 을사늑약(1905) 체결
- 일본이 러일전쟁(1904~1905)에서 승리한 후,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
- **을사늑약(1905)**을 강제로 체결하여 조선의 외교권 박탈
- 대한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 됨
🔹 헤이그 특사 파견(1907)과 강제 퇴위
-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일본의 침략을 국제사회에 알리려 함
- 그러나 일본이 이를 문제 삼아 고종에게 퇴위를 강요
- 결국 1907년 강제 퇴위 → 아들 순종이 즉위
5. 고종의 말년과 사망 (1907~1919)
- 고종은 퇴위 후에도 일본의 감시 속에서 지냈으며,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조선이 일본에 완전히 병합됨
- 1919년 고종이 사망하자, 그의 죽음을 계기로 **3·1 운동(1919)**이 발생
6. 고종의 평가
✅ 긍정적인 평가
-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주 독립을 위한 노력을 기울임
- **근대화 정책(광무개혁)**을 통해 국가 발전 시도
- 일본의 침략에 끝까지 저항하려고 했던 의지
❌ 부정적인 평가
- 적극적인 외교 전략이 부족하여 외세의 침략을 막지 못함
- 명성황후와 민씨 세력의 지나친 권력 남용을 방관
- 을사늑약과 강제 퇴위를 막지 못한 점에서 무능한 지도자로 평가되기도 함
7. 결론
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첫 번째 황제로, 조선의 근대화와 독립을 위해 노력했지만, 일본의 침략과 강압에 의해 주권을 지키지 못한 비운의 왕입니다. 1919년 그의 죽음은 3·1 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고, 이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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